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폰수 4세 (문단 편집) == 생애 == 1291년 2월 8일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 [[리스본]]에서 포르투갈 국왕 [[디니스 1세]]와 아라곤 국왕 [[알폰소 10세]]의 딸인 [[아라곤의 이사벨]] 왕비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누이로 카스티야 국왕 [[페르난도 4세]]의 왕비인 콘스탄사가 있었다. 1309년 카스티야 국왕 [[산초 4세]]의 아들인 베아트리스와 결혼했다. 그는 일찍이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었지만, 디니스 1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디니스 1세는 알돈카 데 소사라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 아폰수 산체스를 매우 총애해, 왕궁에서 함께 살게 하고 알부케르케 영주로 삼았으며, 1312년 궁재에 선임했다. 이러다가 왕위 계승권을 아폰수 산체스에게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폰수 4세는 1321년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들의 특권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조사하는 디니스 1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대다수 귀족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반란군은 포르투갈 북부를 장악하고 코임브라를 거점으로 삼았다. 이사벨 왕비는 코임브라로 가서 아들에게 아버지와 화해하라고 권고했지만 거부당했다. 이후 디니스 1세가 군대를 이끌고 코임브라로 진군해 아폰수 4세와 몬데로 강 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자, 이사벨 왕비는 나귀를 탄 채 다리를 오가며 양 진영에 찾아가 [[골육상쟁]]을 벌이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이사벨의 간곡한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디니스 1세와 아폰수 4세는 1322년 5월 평화 협약을 맺기로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